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니체 (문단 편집) ==== 정의론 ==== '''정의론''' 니체의 정의론은 그의 사도마조히즘적인 경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사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통은 정신을 고양시키기 때문에 정신의 성숙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힘에의 의지'에 의해 고통은 장려되며, 고통으로 인해 더 높은 정신(귀족적 정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망적이네. 고통이 내 삶과 의지를 집어삼키고 있어. (...) 다섯 번이나 죽음의 의사를 불렀다네." >니체는 오버베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져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고도 했다. 자신을 폭발할지 모르는 기계라고 말한 그는 정말로 8월 초에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 이분법을 떠올린 이후 처음으로 폭발적인 생각들을 떠올렸다.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는 그가 나중에 '차라투스트라 바위'라고 부른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영원 회귀 사상'을 생각해냈다. >---- >《니체의 삶》 그는 또한 정의의 기원을 응보와 고통에서 찾으며, 고통을 '가장 오래된 축제'라고 표현한다. 고대의 경제적 교환 관계에서 손해를 변상할 수 없는 인간은 대신 신체형을 받게 되는데, 신체형이 손해를 변상할 수 있다는 개념은 바로 고통을 즐기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악으로 여겨지는 고통이, 고대에는 하나의 축제였으며, 그 축제에서 '고통은 정의로운 것'이라는 개념이 파생되었지만, 노예도덕이 지배하는 근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고통은 악으로 치부되고 있다. 니체는 그러한 굴레에 반대하고 정의의 자기지양을 유토피아로 제시하는데, 자신을 충분히 긍정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은 너그러움을 통해 상대를 용서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를테면 충분히 강력한 제국이었던 로마는 그 이전의 시대보다 범죄에 대해 더 너그러웠으며, 정의는 자기지양을 통해 조금씩 더 너그러워지며 마침내 용서와 자비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니체의 정의관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철학자가 [[미셸 푸코]]라고 할 수 있는데,[* 정확히는 정의에 대한 관점 그 자체라기보다는 정의에 대한 니체의 계보학적 방법론을 말한다.] 푸코의 저작들에는 니체의 계보학적 사유가 뚜렷히 드러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